※중요※ 산유국이 휘발유를 수입하기 시작했습니다. (ft.비싼 회복력?)
하루 900만 배럴을 뽑는 나라가 남의 나라 휘발유를 사 옵니다. 8월 5일, 인도에서 출발한 휘발유 화물선이 러시아 항구에 닿았습니다. 기록상 처음 있는 일입니다. 굉장히 중요합니다. 하루 900만 배럴 넘게 원유를 뽑는 나라가, 그 원유를 인도에 팔고, 인도 정유소가 만든 휘발유를 다시 사오는 겁니다. 심지어 공급자인 나야라 에너지는 러시아 국영 로스네프트가 지분을 가진 회사입니다. 자기 기름을 남의 손에 맡겨 정제하고, 웃돈을 얹어 되사는 겁니다. 뉴스만 보면 러시아 경제가 무너지는 장면 같습니다. 그런데 숫자를 따라가 보면 이야기가 조금 다릅니다. 무너지는 게 아니라, 버티는 값이 매달 비싸지고 있습니다. 왜 기름 나라에 기름이 모자랄까요? 우크라이나가 싸움의 종목을 바꿨기 때문입니다. 전선에서 땅을 다투는 대신, 원유를 돈으로 바꿔주는 설비까지.. 정유소를 태우고 있습니다. 7월 한 달에만 러시아 내륙 200km 이상을 때린 공격이 100건을 넘겨 개전 이후 최대였고, 이번 주엔 모스크바에서 1,860km 떨어진 시베리아 석유화학 단지까지 닿았습니다. 니즈네캄스크 정유소 공격에서는 13명이 숨졌습니다. 정유소는 크고, 비싸고, 느리게 고쳐지는 표적입니다 제재 때문에 수리 부품 조달은 더 느립니다. 그 결과가 가동률에 찍혔습니다. 8월 첫 주 러시아의 원유 정제량은 하루 390만 배럴 수준, 평년 이맘때보다 3분의 1가량 낮다는 추정이 나옵니다. 자기 손으로 디젤과 휘발유를 못 만들게 된 나라의 선택지는 수입, 수출 중단, 재고 소진, 자국 소비 압박 정도인데, 모스크바는 지금 이걸 전부 동시에 하고 있습니다. 9월 1일까지 휘발유·디젤 수출을 금지했고, 7월 디젤 수출은 한 달 새 65% 줄었습니다. 세계 유수의 연료 공급국이 공급을 멈춘 겁니다. 제재를 피해 소유주와 보험을 가린 채 러시아 기름을 나르는 중고 유조선들을 부르는 말입니다. 이번 휘발유 수입도 이 경로를 탔습니다. 러시아 선적 유조선이 인도에서 실고, 이집트 앞바다에서 오만 선적 배로 옮겨 실고, 그 배가 러시아에 닿았습니다. 원유를 빼내려고 만든 우회로가, 이제 연료를 들여오는 데 쓰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돈은 왜 안 줄었을까요? 여기가 이 이야기의 반전입니다. 수출 물량이 이만큼 빠졌으면 수입도 무너져야 하는데, 최근 4주 평균 러시아의 원유 수출 대금은 주당 17억 달러로 거의 그대로입니다. 우랄산 원유 가격이 배럴당 4달러 가까이 오르며 물량 감소를 메웠기 때문입니다. 물량은 줄고, 돈은 버티고, 버티게 해주는 건 가격입니다. 그럼 그 가격은 누가 정할까요. 유럽이라는 큰 시장을 잃은 러시아 원유의 행선지는 이제 사실상 둘, 중국 하루 100만 배럴, 인도 240만 배럴입니다. 러시아에게 이 둘은 전부지만, 이 둘에게 러시아는 여러 공급자 중 하나입니다. 값을 부르는 힘이 파는 쪽이 아니라 사는 쪽에 있습니다. 지금의 수입은 진짜지만, 그 받침대는 언제든 상대가 걷어찰 수 있는 것입니다. 정리하면 비용은 사라진 게 아니라 옮겨가는 중입니다. 정제 마진은 인도 정유사에게, 운임은 그림자 선단에게, 가격 결정권은 두 구매자에게. 러시아는 매번 우회로를 찾아내는데, 우회로마다 통행료가 붙습니다. 지난해 석유·가스가 러시아 국고에 넣어준 돈이 8.5조 루블, 환율에 따라 대략 130조~140조 원인데, 상반기 재정적자만 5.7조 루블입니다. 전쟁이 만든 성장(정부 조달 +39%)과 전쟁이 태우는 산업(정유)이 한 몸에 붙어 있는 경제입니다. 국내 증시와는 어디서 만날까요? 세계 시장에서 지금 모자란 건 원유가 아니라 정제된 연료입니다. 러시아가 디젤을 바다에서 거둬들인 시점이 호르무즈 갈등으로 물류가 꼬인 시점과 겹치면서, 아시아 경유 정제마진은 강세를 지키고 있습니다. 원유를 사서 연료로 바꾸는 회사들, 국내에선 에쓰오일과 SK이노베이션이 이 재료의 관찰 대상입니다. 다만 정제마진은 분기 안에도 크게 출렁이는 값이고, 두 회사 모두 정유 외 사업(화학·배터리)이 실적을 따로 흔들기 때문에 "마진 강세 = 실적"으로 바로 이어지진 않습니다. 다만, 휴전이 오면.. 예측시장은 연말까지 성사 확률을 28%로 봅니다. 그렇게 되면 이 계산은 처음부터 다시입니다. 휴전 없이도 러시아 정제 가동이 평년 수준으로 회복되거나 디젤 마진이 좁혀지면, 이 글의 전제는 힘을 잃습니다. 감시 변수는 경유 정제마진, 우랄-브렌트 할인폭, 그리고 인도의 러시아 원유 수입량입니다. 전쟁 경제의 질문은 다음 우회로를 찾느냐가 아닙니다. 우회로 하나에 얼마씩 내느냐, 그리고 그 돈이 언제까지 나오느냐입니다. 위의 감시 변수 세 개가 그 답을 먼저 알려줄 겁니다. 지켜보도록 하죠. #에쓰오일 #SK이노베이션